심리학세미나 수업이 끝나고.. 윤호에게 연락이 왔다.. 총선.. 민노당 탈당.. 진보신당.. 저녁식사.. 윤호,연준선배와 과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흡사 종교. 맹신도. 몇몇 지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같이 저녁을 먹지 못하고 안녕을 고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마자 우연히 만난 유성. 언론..청년.. 영화학과 대학원.. 서로의 근황..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 퍼스.. 로테르담.. 유성의 '언니'라는 호칭을 듣고 나도 누나라고 부르자니 왠지 아직 어색한 반장님과 미영누나 한미라 선생님 잘 봐주세요 수유너머는 가는 길이 고행이고 시청에서 헤어져 나는 동쪽으로 간다. 내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 실험영화정기상영회를 보기 위해, 인디스페이스를 가기 위해서.. 마침.. 열리고 있는 새드베케이션 시사회로 붐비는 중앙시네마 - 정식개봉을 해도 이렇게 많은 관객들을 한 번에 보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텅.빈.인디스페이스. 함께하기로 한 일행은 없고, 내 옆에는 자막영사용 프로젝터만이 오른쪽 저편으로.. 상영시간이 가까워지자 또 한명의 우연한 만남. 아니 다이애고날 아카이브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면 낮은 확률이라도 만남을 예상할 수 있었던.. 지난달 쿤스트독 실험영화상영 오프닝 때 퍼포먼스를 하셨던 이행준씨..가 사회를 맡고 다짜고짜 나는 인사하고 당연히 나를 못 알아본다.. 이어 들어오는 턱수염이 풍성한 어느 중년 남자와 내 앞쪽과 뒷쪽에 젊은 여성 한 분씩 그리고 내 바로 뒤에 성별과연령을미처인지할새가 없었던 누군가. 이렇게 다섯이서 준비되었습니다. 오늘은 잘랄투픽의 작품들. 1. 아홉번째 밤과 낮 - 아.아.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1차원적인 생각, 시간을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감흥을 줄 수 있다, 같은 장소 다른 상영관에서 몇 달 전 보았던 파라노이드 파크가 아니 생각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억지 같으나 어쨋든 동작의 속도에 맞춘 적절한 사운드 배치는 백건우씨가 또 공연한다는 데 그의 타건을 듣고싶다 2. 얼굴구하기 Saving face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두껍게도 겹겹이 포스터를 붙였구나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의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절묘한 몽타주를 보여주듯 자연스러운 벽보의 폐허들 그 형태대로 유머러스하게 덧붙여지는 음향효과 역시 기발하다 3.이성의 잠: 내 혈관에서 쏟아 흐르는 이 피 The Sleep of Reason ; This Blood Spilled in My Veins 눈은 더 이상 눈이 아니고 입술은 더 이상 입술이 아니다 내가 버스 정류장 광고 커다란 전지현의 얼굴의 커다란 눈만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의 눈은 눈이 아니고 그것이 눈이라는 약속을 집어던지고 하나의 이미지로 심지어 특별한 전경이 아닌 배경으로 흡수가 되도록 만드는 심심한 분위기의 파격적인 미장센 정지-간헐적인움직임-정지 도살장의 소 반쯤 잘린 목 부위를 통해 온 몸의 피가 거즘 다 나왔을 법한데도 느닷없이 움직이는 그 움직임.. 죽은듯 정지-몸부림-정지 그렇게 잔인함에도 순간순간 역시 맥락을 망각하는 앵글 넘치는 피, 목을 베고 가죽을 벗기고 넘치는 피 이행준씨의 사전 경고 때문일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생각보다는 잔인함의 강도가 약하다'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벤트호라이즌을 볼 때만해도 눈을 가리고 두려워했었는데 인간은 왜 나는 왜 피를 보고 찢겨지는 살갗을 보고 메스꺼움에 불편해했을까 왜 피범벅을 보았을 때 고개를 돌려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 진화의 선물일까 인간이라는 종이 오래 살아남기 이위해서는 아마도 자주 보아서 좋을 일이 없는 영상일테니까.. 선혈이 낭자하고 똥을 싸고 바르고 먹고 온갖 변태적인 행동 가혹한 영상들에, 그리고 1차시각적 정보외에 그 동안 내 가슴을 수없이 갈갈이 찢어놓았던 충격적인 현존하는 부조리들에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배수구로 향하는 핏물을 봐도 그저 무덤덤한 나는 인간성을 상실한 걸까 아니 나는 무심한듯 시크하게 살육을 즐기는 싸이코패스가 아니요 여기에 담담해도 담담하지 않아야 할 일에는 담담하지 말 것이며 여전히 가슴은 뜨겁게 덥히고 태양에 눈이 부신다고 살인을 저지를 일은 없으니 자 봐봐.. 스크린 속의 도살장 인부들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있지 않나 무슨 차이가 있나 뒷다리를 묶은 밧줄을 들어올리자 내장들이 소머리 쪽으로 쏟아진다 저 이미지의 변주곡 에반게리온이고 아키라. 베이컨이 그리는 도살장이 아니라 생라이브의 도살장 드로잉 강렬한 죽음.. 보기 원하지 않는 것들. 굳이 알고싶어하지 않는 것들 덮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은 누군가들 여기 이 이미지를 너희들의 주둥아리가 아닌 눈구멍을 벌려 집어넣어주고도 싶은 그들은 결코 보기를 원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영상들 4.아슈라: 내 혈관에서 쏟아 흐르는 이 피 Âshûrâ: This Blood Spilled in My Veins 고행. 몰입. 다시 윤호와 연준선배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는 종교적 행위. 선지자들의 고행 스토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여기 또 경쾌한 타건 피가 고이도록 자기 가슴을 때리는 사람들 어디까지 존중해 주어야 할지.. 최소한 다른 집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주사파는.. 문득 궁금한 것은 '일부' 다른 종교의 맹신도들 수난의 역사가 읊어지면 통곡을 시작하는 기독교 맹신도들 기타 종교 맹신도들이 여기 레바논의 이슬람 맹신도들의 고유 행사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거의 동일한 메커니즘의 행위들인데 설마 혀를 끌끌찰지 극과 극은 통한다는데 그런데 과격분자끼리는 절대 존중할 것 같지 않은 예감.. 그 기억과 약속과 눈물을 보여주고 20여분 간의 롱샷 그 안의 장구한 스토리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찬이슬람가 "당신은 목격자"를 지금 얼토당토않게 패러디하는 나 어찌하나 어찌하나 이 구차한 문장들은 니체를 인용하는 강사.. 수업을 노트, 들뢰즈와 데리다의 인터뷰 영상이 동시에 디스플레이.. 들뢰즈는 기억과 약속에 대해서 데리다는 눈물에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킬 능력을 잃어가고 눈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기 위한..들뢰즈의 엘레지. 통곡. 선지자의 통곡은 신도들의 그것과는 다른 왜 신이시여 하필이면 나를 택했나이까 어떤 시한부 환자가 고통에 찌든 그 환자의 환부 어떤 장기 - 왜 이 장기를 갖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고통스럽습니다. 어떤 초극적인 고통. 예상보다 길었던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각자 일어서는 사람들 각1자들에 대한 무한한 궁금함 당신은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인가요 왜 이렇게 충격적이고 잔인한 영상을 보러 오셨나요 자리를 한 번도 뜨지 않고 말이에요. 이 고행의 시간을 함께 견뎌냈기에 왠지 여러분은 저와 대화가 통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봐요. 하지만 붙잡지 않고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적당히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서울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러는 나는 누구세요.